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S. 패튼 (문단 편집) === 종전 이후의 행적 === >베를린을 돌아보니 우울한 기분이 들었소. 우리는 괜찮은 한 민족을 몰살하고 그들을 소련의 공산주의 야만인들로 대체하려 하고 있소. 이제 유럽은 전부 공산주의자들의 차지가 될 것이오. 듣자하니 베를린을 점령하고 1주일 동안 소련놈들은 도망치는 여자들은 쏴죽이고 도망치지 않은 여자들은 모조리 겁탈했다고 하오. 만약 정부가 허락했다면 소련군 대신 내가 베를린을 점령했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오. >---- >1945년 7월 21일자 부인에게 보낸 편지 >유럽에 남은 제대로 된 사람들은 독일인이 유일하다. 소련과 독일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나는 독일을 택했을 것이다. >---- >1945년 8월 31일자 일기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은 독일을 파괴하여 소련이 집어 삼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1945년 9월 2일자 일기 >난 솔직히 이 무슨 전범재판이니 하는 것들에 반대하오. 이것은 우리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벌이는 일이오. 나는 또 독일군 포로들을 외국에 노예로 보내는 것에 반대하오. 그 곳에서 그들은 혹사당하다가 굶어죽을 게 분명한데 말이오. >---- >1945년 9월 14일자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 >민간정부회의 때문에 프랑크푸르트에 다녀왔소. 만약 지금 우리가 독일인들에게 하고 있는 짓이 ‘자유’라면 차라리 나는 죽음을 택할 것이오. 어떻게 미국인들이 이렇게 낮은 곳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모를 일이오. 나는 이 모든 일이 유대인들 때문이라 확신하오. >---- >부인에게 보내는 또다른 편지 패튼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독일을 매우 혐오하였으나 종전 이후 모든 힘을 잃고 무력해진 독일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게 되었고, 독일과 독일인에 대한 배려로 '''미국 워싱턴 정계와 자주 대립했다.''' 또한 패튼은 강력한 [[반공주의]]자였고, [[반유대주의]]자였다.[* 다만 반유대주의자여도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쌓인 시체들을 보고 구토를 한 것을 보면 어디까지나 열등하다는 당시기준만큼의 반유대주의자지, 나치처럼 다 죽이자는 막가파는 아닌듯하다.] [[나치당]]을 [[민주당(미국)|미국 민주]]-[[공화당(미국)|공화당]] 정도로 비유하고 나치 인사들을 관대히 처리해 미국 워싱턴 정계에서 큰 비판을 받았고, [[소련]]을 매우 싫어했다. 전직 나치당원을 정부 요직에 임명한 것에 대해서 비난이 빗발치자 "독일 공무원의 태반이 나치 당원이었다. 그러면 정부 일을 까막눈들한테 맡기란 말이냐?"고 항변했다.[[베를린]]에 입성해서는 "우린 괜찮은 민족 하나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소련의 야만인들로 채워놓았다."고 투덜거렸다는 일화가 있으며 프레드 아이어 주니어의 에 따르면, 1945년 9월, 패튼의 2번째 베를린 방문시에 소련 측에서 4개 연합국을 상대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개최하였다. 이때 패튼 옆에 앉아이 었던 [[소련군]] 총사령관 대리인 [[주코프]]가 패튼에게 행진하는 소련군의 신형 [[IS-3|중전차]]들을 가리키면서 자랑했다. >친애하는 패튼 장군. 저 전차들이 보이십니까? 저 전차들에는 포탄을 무려 1마일(약 1.6 킬로미터) 바깥으로까지 쏠 수 있는 강력한 주포들이 장착되어 있소. 그러자 패튼은 매우 적대적으로 반응했다. >아 그렇습니까? 친애하는 주코프 원수, 내가 한가지 알려드리죠. 만약 저는 제 포수들 중 누구라도 당신네 소련 사람들이 우리 측에 700야드(약 640미터) 안까지 접근하기 전에 쏜다면 적전도주죄로 군법재판에 처넣어버릴 겁니다. 책에 인용된 팻 멀리-스미스의 회고에 따르면 주코프는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고 하며, 1천쪽에 달하는 방대한 주코프 회고록에서도 패튼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원수, 원수의 그 배때지를 당신들이 자랑하는 사거리 밖에서 내가 쏘아서 뚫어버릴테니 주둥이 닥치시고 우리의 감시망에 들어오지 마시오"라고 위협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자신이 진주한 곳에서 소련군을 피해 항복해온 국방군 2개의 사단과 친위대 1개의 사단을 해체하지 않고, 훈장을 받은 독일 장교들이란 장교들은 불러다가 같이 밥까지 먹자, 빡친 소련군이 연락장교를 보내 항의했다.[* 연합군과 소련군은 소련군에게서 도망쳐서 연합군에게 항복한 독일군들을 전부 소련에 넘기기로 합의를 본 상태였다.] 그러자 패튼은 그 연락장교의 항의에 빡돌아서 "니놈 빨갱이 새끼의 궁둥이를 내가 직접 차서 이 군영에서 쫓아내겠다!"고 난리를 쳤고 소련군 연락장교는 서둘러 패튼의 군영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영화 패튼 대전차군단에도 소련군에게 으르렁거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련군 병사들이 추는 춤을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던 패튼은 소련군 장군 [[미하일 카투코프]]가 건배를 제안하자 "댁이나 어떤 러시아 개새끼들과도 술 마실 생각 없다."라고 빈정대고 하얗게 질린 통역가에게 그대로 번역하라고 지시한다. 통역을 들은 카투코프 장군이 노해서 "당신도 개새끼요."라고 맞받아치자 패튼은 씩 웃더니 그럼 개새끼 대 개새끼로 건배하자고 승낙한다. 그 외 앞서 소개한 독일 패잔병들 문제로 욕먹은 소련군이 아이젠하워에게 불평하자 아이젠하워는 브래들리에게 패튼을 좀 타일러서 독일 패잔병들을 해체하게 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온 브래들리에게 패튼이 한 말이... '''"난 이 독일 나치놈들이 좋네! 그들은 진정한 전사란 말이야. 이놈들과 함께 아이젠하워한테 찡찡거리는 소련 놈들을 부숴버리겠어! [[냉전|이제 우리의 적은]] [[언싱커블 작전|소련이란 말씀이야!"]]'''라고 말했고 브래들리는 도청을 당하고 있을까 봐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사실 골수까지 기병 정신인 패튼이, 전격전을 상징하는 나치 독일군에 우호적인 게 그렇게 이해 못할 사안은 아니다. 결과지상주의로써 흑인들을 차별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으로, 패튼이란 사람은 어떤 사상이나 가치관보다도 오로지 기병적인 기동 중심의 군인 마인드인 사람이라서, 나치 독일과의 전쟁도 나치의 만행에 치를 떨어 단죄하려 했다기보다는 상부의 지시 때문에 군인답게 복명한 것에 가까우며 [[보너스 군대]] 사건처럼 그의 [[반공주의]]적 성격이 강했던 것도 이런 대우에 한 몫 했다. 결국 이 문제를 두고 1945년 9월 28일 [[아이젠하워]]와의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결국 10월 7일 미3군 사령관에서 해임당했다. 또한 아이젠하워하고는 완전히 돌아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